• 최종편집 2026-08-12(수)
 

지난 대형 산불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깊다. 외견상 진화는 완료되었으나, 정작 깊은 산속에는 수거 비용 부담과 원목 가치 하락으로 인해 벌채되지 못하거나 베어진 채 방치된 산불 피해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러한 피해목의 장기 방치는 집중호우 시 산사태를 유발하는 시한폭탄이 되며,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의 산란처로 전락해 주변의 건강한 산림까지 황폐화하는 2차 환경 재난을 낳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산주와 목재산업계가 짊어진 경제적 고통이다. 일시에 쏟아진 피해목으로 인해 국내 원목 시장의 공급망이 왜곡되고 가격이 폭락하면서, 산주들은 벌채 비용조차 건지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 평생 가꾼 자산이 산속에서 무의미하게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산주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산 우량 자원이 자산 가치를 상실한 채 증발하는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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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목재 수요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목재 수입국이다. 글로벌 자원 무기화와 공급망 위기 속에서 국산 원목을 자원화하는 것은 단순한 재해 복구를 넘어, 국가 경제의 안보와 직결된 ‘목재주권’ 확립의 핵심 과제다. 겉이 일부 탔더라도 내부 심재가 건전한 낙엽송이나 소나무 등은 훌륭한 공학 목재 및 구조 자재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제는 피해목을 처리 곤란한 폐기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목재 자급률을 끌어올릴 소중한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목재주권을 확보하고 산주와 산업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구체적인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대안은 현재 국내에 전무한 ‘국산 원목 중심의 현대식 합판 가공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건축 공사용 거푸집이나 구조용 자재로 널리 쓰이는 합판은 국산재 활용도가 낮아 해외 수입 의응도가 극히 높은 품목이다. 피해목 중 규격이 작거나 손상된 원목까지도 첨단 박판 절삭 기술을 통해 고품질 합판이나 단판적층재(LVL)로 가공해 낸다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구조용 합판 시장을 국산재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는 방치된 피해목의 대규모 수요처를 확보하여 산주의 소득을 보전하고 국내 합판·보드 산업을 부활시키는 열쇠가 된다.


이와 함께 친환경 목조건축 시장과 연계한 고부가가치 자원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중·대경목 피해목을 첨단 프리컷(Pre-Cut) 및 규격화된 정밀 가공 시스템을 통해 모듈러 목조주택용 다중샛기둥 패널 등의 공학 목재로 전환하는 기술 투자가 필요하다. 공장에서 정밀하게 맞춤 제작된 구조 부재를 활용한 탈현장 건축(OSC) 방식은 건축비를 절감하고 공기를 단축시켜 국산 목재의 대중적 수요를 폭발적으로 견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적 인프라가 작동하려면 강력한 입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공공건축물에 국산 목재와 재활용 자재 적용을 의무화하고 민간 목조건축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목조건축진흥법’의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목재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재난 피해목의 수거, 건조, 가공 유통 전반에 걸친 물류비용과 시설 자금을 정부가 직접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다져야 한다. 피해 지역 거점에 제재·고온건조·합판 가공 인프라를 일원화한 ‘첨단 목재산업 클러스터’를 지정하는 것도 산업계를 살리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나무를 베어내어 영구적인 목조건축물이나 합판 자재로 사용하는 것은 대기 중의 탄소를 고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잿더미 속에서 건져낸 국산 원목으로 합판을 만들고 우리 삶의 공간을 짓는 일은, 재난으로 무너진 산주와 임업 가가를 촉진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탄소중립과 목재주권이라는 국가적 대업의 출발점은 바로 산속에 방치된 국산 원목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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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치된 산불 피해목, ‘국산 합판공장’과 ‘목재주권’ 확립의 마중물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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